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청야 전술 (문단 편집) === 필요성 === [[고대]]의 [[전장]]은 [[현대]]에 비해서 전시에 [[보급]]이 훨씬 어려웠다. 생산력의 한계, 보관기술의 부재, 교통수단의 미비가 가장 대표적인 원인이다. 이 때문에 군대의 보급에서 물자의 현지조달, 즉 약탈(혹은 현지확보)의 비중이 매우 높았다. 손자의 [[손자병법]] 작전 편에 적에게서 [[노획]]한 물자는 아군 물자의 '''20배'''에 달하는 가치가 있다고 했다. 물자 획득 + 물자 수송비용 절감 + 적군의 물자 감소라는 삼중 효과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까이지만, 당시에는 오히려 '''현지조달이 정상'''이었다.[* 한국에 잘 알려진 사례로 임진왜란 당시 원군으로 파병된 명나라군의 현지조달(을 명목삼은 약탈)을 들 수 있다. 당시 조선은 상업이 발달하지 않은 데다 도로마저 제대로 정비되지 않아서, 명나라군이 소유한 은을 식량으로 바꿀 수가 없었던데다 명나라가 의주까지 싣고 온 식량들을 평양 이남으로 수송하는데 실패하여 보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 즉, 보급의 측면에서 물자수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전략적 후퇴가 용인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현지조달은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것이고, 고대의 전장은 이런 불가피한 상황이 당연하리만큼 높은 빈도로 발생했다.] 근대까지도 물자 보급을 스스로 100% 수행하는건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에 수송작전을 병행하면서도 어지간하면 군대를 쪼개서 여러 지역으로 진출시키는 방법을 써서 해당지역에서 현지조달을 실시하여 보급하려고 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